하늘 쉼터/추억의 뒤안길

그리운 운동회

천리향(민정) 2012. 9. 8. 18:06

 

책가방이 귀한 시절 너나 없이 허리에 동여매고 다니던 책보입니다.

 

 

그리운 운동회

 

 

~~~~

총소리가 갑자기 귀청을 때리면

출발점 앞에 마음 졸이고 있던 아이들이 앞으로 내 달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주전자에 하얀 횟가루 풀어 금 그어 놓은 선만 보입니다.

앞에는 철수가 달리고 뒤에는 누가 따라오는지도 모른 체 그저 앞만 보고 달립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신나는 응원 소리에 힘차게 달리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6 학년 언니들이 서로 맞잡고 있는 하이얀 결승 테이프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넘어져도 부끄러울 것 없는 즐거운 운동회.

일어나서 다시 달리면 꽁지에게도 공책 한 권은 돌아옵니다.

 

 

운동장 가득 덮은 만국기는 향기 해맑은 코스모스와 서로의 바람으로 얼굴 간질이고

넘어진 아이들을 재미있어 하며 하늘거리고 팔랑거립니다.

프라타나스 넓은 잎도 싱글싱글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운동회날은 언제나 가을 색깔 가장 고운 때 열립니다.

햇살은 금가루처럼 묻어나고

하늘은 흰 손수건 던지면 금방이라도 파르라니 물들여 질 듯 푸른 하늘입니다. 

새털구름은 높고 높아 양털처럼 보드랍게 깔려있는 가을 운동회날.

앞 동네 뒷 동네 산 넘어 숨은 동네, 학교를 둘러싼 모든 동네에 잔치가 열리는 마당입니다.

수확의 뒤끝 풍성한 가을 운동회날

교정에는 발 빠른 장사치들이 몫 좋은 자리에 좌판을 벌려놓고

장작불 무쇠 솥에 끓이는 구수한 국밥 냄새로 사람들의 시장기를 자극하면

아이들 보다 먼저 신명난 어른들은

막걸리 한 사발에 불콰해져 만나는 사람마다 술잔 권하기 바쁩니다.

 

꼬끼요~~~

장닭 우는 소리에 새벽잠 설치고 일어난 어머니는

알밤톨 깎아 강낭콩 버물린 오곡으로 기름진 찰밥을 짓고

달디단 햇밤 한 바가지 삶고 까만 찰옥수수 속노란 고구마도 한 솥 가득 쩌 낸 뒤

씨암탉 몇날 며칠 모은 귀한 달걀도 두 어줄 삶아 냅니다.

텃밭에 붉은 사과 못 생긴 돌배와 울 넘어 대추나무 붉은 알 보태고

아직은 떫은 감 몇 알도 챙깁니다.

 

어머니는 운동회날을 잔칫날처럼 준비합니다.

시집올 때 가져온 옻 칠 잘 먹인 찬합에 우리 예쁜 선생님 점심도 특별히 준비합니다.

동무들 가족에게 나누어줄 여분 음식도 풍성하게 준비 합니다.

아버지는 동네 가게에서 사이다 몇 병도 사 오셔서

달리기하다 숨 가빠진 나의 목을 추겨줄 준비도 합니다.

 

시오리길 타박타박 걸어 학교로 가는 길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기만 합니다.

누렇게 익은 황금들판에 펼쳐진 나락줄기 탁탁 건드리면

놀란 메뚜기 어쩔 줄 몰라 틔어 오를 때

재빨리 몇 마리 잡아 나락줄기에 꿰어 허리춤에 차고 가다보면

허수아비 밀짚모자에 앉은 빨간 고추잠자리와 눈싸움도 하고

실개천 송사리들 조약돌 던져 놀래주기도 합니다.

 

풀숲에 떨어진 살찐 도토리 몇 알 줍다 보면

학교 가는 길 시오리, 그렇게 멀기만 하던 길이

운동회날은 금새 코앞에 다가옵니다.

기마전에 할퀸 손톱자국도

달리다 넘어져 멍든 무릎도

줄다리기하다 뒤로 넘어져 까진 엉덩이도

어머니는 얹잖은 표정도 없이 빨간약 발라주시며

즐겁고 너그럽게 웃으시기만 합니다.

 

~~~~

가을 운동회 그 총소리가 다시 그리워집니다.

누런 속종이 네모진 칸 얇은 공책도 새록새록 그리워집니다.

몽당연필에 침을 무쳐 삐뚤빼뚤 글이 쓰고 싶어집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시집간 누나와 함께

오곡밥이랑 밤이랑 삶은 고구마를 다시 한 번 먹고 싶어지는

즐거운 운동회가 생각나는 가을입니다.

코스모스 다시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그리운 운동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괜스레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 도는 이상한 가을입니다.

 

눈물 나는 이상한 가을에 연필 가는대로 쓰는 낙서 !

 

푸 른 바 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처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 하기. 무릅이 벗겨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뛰나 훨훨...




청군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 목이쉬고...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 시간 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루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 때 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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