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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70년대 영화 포스터

천리향(민정) 2012. 9. 8. 18:14

옛 서문시장과 우시장  +   [대구 옛 사진(근대)]  
1923년 이전 어느 때인가의 대구 구 서문시장입니다. 대신동에 있는 현재의 서문시장이 아니라 동산파출소 및 오토바이골목 일대에 위치하던 구 서문시장의 모습입니다. 원래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후반부터 이곳에 위치하였는데, 1923년경에 현재의
 서문시장 자리였던 천왕당못을 메우고 그곳으로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산동,대신동 일대의 달성고분군의 봉분 봉토를 가져다 천왕당못을 메우는 문화재적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시장이 모습이 지금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활발해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첨탑은 계산성당입니다. 따라서 본 사진은 남쪽 방향으로 보고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으며, 배경에 보이는 산은 앞산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은
현재 동산병원이 위치하는 동산(東山)이며, 산 위의 집은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집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 오래된 1907년의 서문시장입니다. 역시 시장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의 옛 위치입니다.
대구 인근 도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장꾼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시장판'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위의 사진과는 반대로, 북쪽을 보고 찍은 것입니다. 사진 상단에 보이는 작은 산은 현재 북구에 있는 침산(또는 오봉산)입니다. 침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과 닮았다 해서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 사진을 보니 참으로 적당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장의 일제시대 구 서문시장의 사진입니다. 왜인지, 사진에 인쇄된 제목이 '조선(朝鮮)'이 아닌 '한국(韓國)'인 것이 눈에 띄는군요. 부슬비라도 내리는 날이었을가요? 삿갓을 쓴 사람도 보이고, 난전들에도 거적때기를 걸쳤네요.



 
 
 

 
 
 
 
 
 
 
 
 
 
 
 
 
 
 
 
 
 
 
 
 
 
 
 
 
20세기 초기의 대구 우시장(牛市場), 즉 소와 말을 거래하던 시장입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이 우시장은 옛 서문시장 서편
일대로 나왔는데, 현재의 대신동 미싱골목과 그 북쪽 일대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지금도 미싱골목 북편 좁고 구불구불한 옛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한옥 민 가에 간판을  내건 오래된 육개장 식당이 몇군데 있습니다. 그 소국밥 식당들이 혹시 이 우시장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일제시대의 대구 모습들  +   [대구 옛 사진(근대)] 
일제 때 모도마치(元町)로 불렸던 북성로의 밤거리. 지금은 공구·기구상 거리로 변했지만
일제 때만 해도 은방울 모양의 휘황찬란한 가로등과 함께 ‘대구의 긴자(銀座)’로 불렸다.



또 다른 북성로 밤거리 사진. 일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으나 동인네거리 부근인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달성공원. 일제시대 당시에는 대구 신사(神社)였다. 사진 우측의 현재 달성공원 정문 위치에 신사의 입구를 표시하는
'도리이'가 서있다. 정면의 토성 위에는 1906년에 경상감영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관풍루가 보인다.


옛 화원유원지.


옛 경북여고.














현재의 중앙공원 부근 번화가.


일제의 신사가 있던 일제시대의 달성공원 입구 모습.


북성로 쪽에서 달성공원 입구를 바라본 모습.


달성공원에 있던 우물 (1930년)


일제시대 달성공원 앞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학생들과 교사.


일제시대 당시 달성공원 모습.


1925년의 옛 대구부청(大邱府廳)

















"大邱 元町通り" 라고 합니다. 지금의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타고 노는 당시의 삼륜자전거가 이채롭습니다.


"大邱前 大通り" 라고 합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생겼다는 큰 도로인것 같습니다.


大邱府 商業會議所


大邱 水源地
 
 
옛 서문시장과 우시장  +   [대구 옛 사진(근대)]  
1923년 이전 어느 때인가의 대구 구 서문시장입니다. 대신동에 있는 현재의 서문시장이 아니라 동산파출소 및 오토바이골목 일대에 위치하던 구 서문시장의 모습입니다. 원래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후반부터 이곳에 위치하였는데, 1923년경에 현재의
 서문시장 자리였던 천왕당못을 메우고 그곳으로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산동,대신동 일대의 달성고분군의 봉분 봉토를 가져다 천왕당못을 메우는 문화재적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시장이 모습이 지금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활발해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첨탑은 계산성당입니다. 따라서 본 사진은 남쪽 방향으로 보고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으며, 배경에 보이는 산은 앞산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은
현재 동산병원이 위치하는 동산(東山)이며, 산 위의 집은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집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 오래된 1907년의 서문시장입니다. 역시 시장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의 옛 위치입니다.
대구 인근 도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장꾼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시장판'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위의 사진과는 반대로, 북쪽을 보고 찍은 것입니다. 사진 상단에 보이는 작은 산은 현재 북구에 있는 침산(또는 오봉산)입니다. 침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과 닮았다 해서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 사진을 보니 참으로 적당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장의 일제시대 구 서문시장의 사진입니다. 왜인지, 사진에 인쇄된 제목이 '조선(朝鮮)'이 아닌 '한국(韓國)'인 것이 눈에 띄는군요. 부슬비라도 내리는 날이었을가요? 삿갓을 쓴 사람도 보이고, 난전들에도 거적때기를 걸쳤네요.



 
 
 

 
 
 
 
 
 
 
 
 
 
 
 
 
 
 
 
 
 
 
 
 
 
 
 
 
20세기 초기의 대구 우시장(牛市場), 즉 소와 말을 거래하던 시장입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이 우시장은 옛 서문시장 서편
일대로 나왔는데, 현재의 대신동 미싱골목과 그 북쪽 일대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지금도 미싱골목 북편 좁고 구불구불한 옛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한옥 민 가에 간판을  내건 오래된 육개장 식당이 몇군데 있습니다. 그 소국밥 식당들이 혹시 이 우시장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일제시대의 대구 모습들  +   [대구 옛 사진(근대)] 
일제 때 모도마치(元町)로 불렸던 북성로의 밤거리. 지금은 공구·기구상 거리로 변했지만
일제 때만 해도 은방울 모양의 휘황찬란한 가로등과 함께 ‘대구의 긴자(銀座)’로 불렸다.



또 다른 북성로 밤거리 사진. 일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으나 동인네거리 부근인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달성공원. 일제시대 당시에는 대구 신사(神社)였다. 사진 우측의 현재 달성공원 정문 위치에 신사의 입구를 표시하는
'도리이'가 서있다. 정면의 토성 위에는 1906년에 경상감영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관풍루가 보인다.


옛 화원유원지.


옛 경북여고.














현재의 중앙공원 부근 번화가.


일제의 신사가 있던 일제시대의 달성공원 입구 모습.


북성로 쪽에서 달성공원 입구를 바라본 모습.


달성공원에 있던 우물 (1930년)


일제시대 달성공원 앞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학생들과 교사.


일제시대 당시 달성공원 모습.


1925년의 옛 대구부청(大邱府廳)

















"大邱 元町通り" 라고 합니다. 지금의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타고 노는 당시의 삼륜자전거가 이채롭습니다.


"大邱前 大通り" 라고 합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생겼다는 큰 도로인것 같습니다.


大邱府 商業會議所


大邱 水源地
 
 
옛 서문시장과 우시장  +   [대구 옛 사진(근대)]  
1923년 이전 어느 때인가의 대구 구 서문시장입니다. 대신동에 있는 현재의 서문시장이 아니라 동산파출소 및 오토바이골목 일대에 위치하던 구 서문시장의 모습입니다. 원래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후반부터 이곳에 위치하였는데, 1923년경에 현재의
 서문시장 자리였던 천왕당못을 메우고 그곳으로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산동,대신동 일대의 달성고분군의 봉분 봉토를 가져다 천왕당못을 메우는 문화재적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시장이 모습이 지금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활발해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첨탑은 계산성당입니다. 따라서 본 사진은 남쪽 방향으로 보고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으며, 배경에 보이는 산은 앞산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은
현재 동산병원이 위치하는 동산(東山)이며, 산 위의 집은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집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 오래된 1907년의 서문시장입니다. 역시 시장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의 옛 위치입니다.
대구 인근 도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장꾼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시장판'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위의 사진과는 반대로, 북쪽을 보고 찍은 것입니다. 사진 상단에 보이는 작은 산은 현재 북구에 있는 침산(또는 오봉산)입니다. 침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과 닮았다 해서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 사진을 보니 참으로 적당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장의 일제시대 구 서문시장의 사진입니다. 왜인지, 사진에 인쇄된 제목이 '조선(朝鮮)'이 아닌 '한국(韓國)'인 것이 눈에 띄는군요. 부슬비라도 내리는 날이었을가요? 삿갓을 쓴 사람도 보이고, 난전들에도 거적때기를 걸쳤네요.



 
 
 

 
 
 
 
 
 
 
 
 
 
 
 
 
 
 
 
 
 
 
 
 
 
 
 
 
20세기 초기의 대구 우시장(牛市場), 즉 소와 말을 거래하던 시장입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이 우시장은 옛 서문시장 서편
일대로 나왔는데, 현재의 대신동 미싱골목과 그 북쪽 일대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지금도 미싱골목 북편 좁고 구불구불한 옛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한옥 민 가에 간판을  내건 오래된 육개장 식당이 몇군데 있습니다. 그 소국밥 식당들이 혹시 이 우시장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일제시대의 대구 모습들  +   [대구 옛 사진(근대)] 
일제 때 모도마치(元町)로 불렸던 북성로의 밤거리. 지금은 공구·기구상 거리로 변했지만
일제 때만 해도 은방울 모양의 휘황찬란한 가로등과 함께 ‘대구의 긴자(銀座)’로 불렸다.



또 다른 북성로 밤거리 사진. 일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으나 동인네거리 부근인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달성공원. 일제시대 당시에는 대구 신사(神社)였다. 사진 우측의 현재 달성공원 정문 위치에 신사의 입구를 표시하는
'도리이'가 서있다. 정면의 토성 위에는 1906년에 경상감영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관풍루가 보인다.


옛 화원유원지.


옛 경북여고.














현재의 중앙공원 부근 번화가.


일제의 신사가 있던 일제시대의 달성공원 입구 모습.


북성로 쪽에서 달성공원 입구를 바라본 모습.


달성공원에 있던 우물 (1930년)


일제시대 달성공원 앞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학생들과 교사.


일제시대 당시 달성공원 모습.


1925년의 옛 대구부청(大邱府廳)

















"大邱 元町通り" 라고 합니다. 지금의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타고 노는 당시의 삼륜자전거가 이채롭습니다.


"大邱前 大通り" 라고 합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생겼다는 큰 도로인것 같습니다.


大邱府 商業會議所


大邱 水源地
 
 
옛 서문시장과 우시장  +   [대구 옛 사진(근대)]  
1923년 이전 어느 때인가의 대구 구 서문시장입니다. 대신동에 있는 현재의 서문시장이 아니라 동산파출소 및 오토바이골목 일대에 위치하던 구 서문시장의 모습입니다. 원래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후반부터 이곳에 위치하였는데, 1923년경에 현재의
 서문시장 자리였던 천왕당못을 메우고 그곳으로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산동,대신동 일대의 달성고분군의 봉분 봉토를 가져다 천왕당못을 메우는 문화재적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시장이 모습이 지금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활발해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첨탑은 계산성당입니다. 따라서 본 사진은 남쪽 방향으로 보고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으며, 배경에 보이는 산은 앞산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은
현재 동산병원이 위치하는 동산(東山)이며, 산 위의 집은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집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 오래된 1907년의 서문시장입니다. 역시 시장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의 옛 위치입니다.
대구 인근 도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장꾼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시장판'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위의 사진과는 반대로, 북쪽을 보고 찍은 것입니다. 사진 상단에 보이는 작은 산은 현재 북구에 있는 침산(또는 오봉산)입니다. 침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과 닮았다 해서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 사진을 보니 참으로 적당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장의 일제시대 구 서문시장의 사진입니다. 왜인지, 사진에 인쇄된 제목이 '조선(朝鮮)'이 아닌 '한국(韓國)'인 것이 눈에 띄는군요. 부슬비라도 내리는 날이었을가요? 삿갓을 쓴 사람도 보이고, 난전들에도 거적때기를 걸쳤네요.



 
 
 

 
 
 
 
 
 
 
 
 
 
 
 
 
 
 
 
 
 
 
 
 
 
 
 
 
20세기 초기의 대구 우시장(牛市場), 즉 소와 말을 거래하던 시장입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이 우시장은 옛 서문시장 서편
일대로 나왔는데, 현재의 대신동 미싱골목과 그 북쪽 일대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지금도 미싱골목 북편 좁고 구불구불한 옛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한옥 민 가에 간판을  내건 오래된 육개장 식당이 몇군데 있습니다. 그 소국밥 식당들이 혹시 이 우시장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일제시대의 대구 모습들  +   [대구 옛 사진(근대)] 
일제 때 모도마치(元町)로 불렸던 북성로의 밤거리. 지금은 공구·기구상 거리로 변했지만
일제 때만 해도 은방울 모양의 휘황찬란한 가로등과 함께 ‘대구의 긴자(銀座)’로 불렸다.



또 다른 북성로 밤거리 사진. 일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으나 동인네거리 부근인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달성공원. 일제시대 당시에는 대구 신사(神社)였다. 사진 우측의 현재 달성공원 정문 위치에 신사의 입구를 표시하는
'도리이'가 서있다. 정면의 토성 위에는 1906년에 경상감영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관풍루가 보인다.


옛 화원유원지.


옛 경북여고.














현재의 중앙공원 부근 번화가.


일제의 신사가 있던 일제시대의 달성공원 입구 모습.


북성로 쪽에서 달성공원 입구를 바라본 모습.


달성공원에 있던 우물 (1930년)


일제시대 달성공원 앞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학생들과 교사.


일제시대 당시 달성공원 모습.


1925년의 옛 대구부청(大邱府廳)

















"大邱 元町通り" 라고 합니다. 지금의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타고 노는 당시의 삼륜자전거가 이채롭습니다.


"大邱前 大通り" 라고 합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생겼다는 큰 도로인것 같습니다.


大邱府 商業會議所


大邱 水源地
 
 
 
외나무 다리 / 최무룡
옛 서문시장과 우시장  +   [대구 옛 사진(근대)]  
1923년 이전 어느 때인가의 대구 구 서문시장입니다. 대신동에 있는 현재의 서문시장이 아니라 동산파출소 및 오토바이골목 일대에 위치하던 구 서문시장의 모습입니다. 원래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후반부터 이곳에 위치하였는데, 1923년경에 현재의
 서문시장 자리였던 천왕당못을 메우고 그곳으로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산동,대신동 일대의 달성고분군의 봉분 봉토를 가져다 천왕당못을 메우는 문화재적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시장이 모습이 지금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활발해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첨탑은 계산성당입니다. 따라서 본 사진은 남쪽 방향으로 보고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으며, 배경에 보이는 산은 앞산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은
현재 동산병원이 위치하는 동산(東山)이며, 산 위의 집은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집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 오래된 1907년의 서문시장입니다. 역시 시장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의 옛 위치입니다.
대구 인근 도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장꾼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시장판'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위의 사진과는 반대로, 북쪽을 보고 찍은 것입니다. 사진 상단에 보이는 작은 산은 현재 북구에 있는 침산(또는 오봉산)입니다. 침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과 닮았다 해서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 사진을 보니 참으로 적당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장의 일제시대 구 서문시장의 사진입니다. 왜인지, 사진에 인쇄된 제목이 '조선(朝鮮)'이 아닌 '한국(韓國)'인 것이 눈에 띄는군요. 부슬비라도 내리는 날이었을가요? 삿갓을 쓴 사람도 보이고, 난전들에도 거적때기를 걸쳤네요.



 
 
 

 
 
 
 
 
 
 
 
 
 
 
 
 
 
 
 
 
 
 
 
 
 
 
 
 
20세기 초기의 대구 우시장(牛市場), 즉 소와 말을 거래하던 시장입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이 우시장은 옛 서문시장 서편
일대로 나왔는데, 현재의 대신동 미싱골목과 그 북쪽 일대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지금도 미싱골목 북편 좁고 구불구불한 옛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한옥 민 가에 간판을  내건 오래된 육개장 식당이 몇군데 있습니다. 그 소국밥 식당들이 혹시 이 우시장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일제시대의 대구 모습들  +   [대구 옛 사진(근대)] 
일제 때 모도마치(元町)로 불렸던 북성로의 밤거리. 지금은 공구·기구상 거리로 변했지만
일제 때만 해도 은방울 모양의 휘황찬란한 가로등과 함께 ‘대구의 긴자(銀座)’로 불렸다.



또 다른 북성로 밤거리 사진. 일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으나 동인네거리 부근인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달성공원. 일제시대 당시에는 대구 신사(神社)였다. 사진 우측의 현재 달성공원 정문 위치에 신사의 입구를 표시하는
'도리이'가 서있다. 정면의 토성 위에는 1906년에 경상감영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관풍루가 보인다.


옛 화원유원지.


옛 경북여고.














현재의 중앙공원 부근 번화가.


일제의 신사가 있던 일제시대의 달성공원 입구 모습.


북성로 쪽에서 달성공원 입구를 바라본 모습.


달성공원에 있던 우물 (1930년)


일제시대 달성공원 앞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학생들과 교사.


일제시대 당시 달성공원 모습.


1925년의 옛 대구부청(大邱府廳)

















"大邱 元町通り" 라고 합니다. 지금의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타고 노는 당시의 삼륜자전거가 이채롭습니다.


"大邱前 大通り" 라고 합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생겼다는 큰 도로인것 같습니다.


大邱府 商業會議所


大邱 水源地
 
 
 
외나무 다리 / 최무룡

추억의 70년대 영화 포스터

 
 
 
 
추워요 / 이장희(별들의 고향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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