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쉼터/추억의 뒤안길

숭례문 역사

천리향(민정) 2012. 9. 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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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어느 선교사가 찍었다는 이 사진들은
흑백사진에 컬러을 입힌 모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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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숭례문...........

 

50년전 한국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살아 남은 숭례문...

 

 

80년전 일제 강점기 시절 숭례문....

 

 

100년전 한일합방(경술국치) 직전..대한제국 시절 숭례문...

 

 

120년전 구한말 일본인이 찍은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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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숭례문.......

 









숭례문 바로 안쪽
기와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한양에는 인구밀도가 무척 높았다고 합니다.




남대문통
남대문통입니다. 숭례문 바로 안쪽에 성벽을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대문통"이라는 명칭은 일제때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으로 들어오는 일본군





일본인 거류지역으로 가는 일본군





전차 개통 당시





숭례문 우립


숭례문 우좌

"우립"과 "우좌"는 "소가 섰다", "소가 앉았다"라는 뜻의 한자입니다. 별 내용아닙니다. ^^;





숭례문 칠패(시장)





1897





1897원경





1900년대








1910





1950





한국 전쟁 직 후
전쟁으로 숭례문은 전체적으로 내려 앉아서 완전히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대공사를 하게됩니다.





보수 공사가 끝난 모습..




 

 


        그대여 다시 보고싶습니다
         -淸夏김철기-
        한민족의 질곡과 애환 거기에 서서
        고집스럽게 새겨놓고서울 중구 남대문로 4가 29번지
        육백십 년 역사를 간직한참고 숨 쉬어준 님이시어
        정말 죄송합니다 참담했었다
        온 국민은 숯덩어리로 변하며 소실되어가는 그대를 보고있노라니밤새 가슴을 찢어야만 했던고통과
        슬픔을 겪어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대 때문에육백십 년을 문화 민족으로 자처하였건만
        이젠 미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칠순 미치광이 때문에 난 얼굴들고
        그대 뵙기가 수치스럽습니다
        육백십 년을 단 다섯 시간 만에 잿더미로 변하던 시간
        송구스럽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난 그냥 땅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아 그대여 그대 앞에 사죄하며
        울먹이는 수많은 국민을 보소서
        그대가 다시 활짝 꽃 피워줄 수 있는 그날
        문화 민족의 긍지를 살려주소서
        다시 태어나 희망을 주소서
        아 숭례문 천 년 만 년 우리에게 찬란한 그 모습
        다시 볼수있게 하소서